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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마스 이브와 기차 여행
 
곽동원  2009-12-26 07:22:01 




아파트 문을 밀고 나선 마을에는 밤새워 태운 석탄 연기로 가득하고, 아침 8시 인데도 거리는 여전히 미명 이었습니다. 미하일로프카의 어두운  아침은, 학교에 가는 아이들과,무거운 모피 코트 깃을 세우고 샤프카라 부르는 모피 모자를 쓴 여인들과,어두운 표정의 러시안 남정네들이 연실 담배 연기를 뿜어대며 일터로 향하느라 작은 소요로 붐비고 있었고, 아내와 나는 익숙치 않은 이곳 낯선 새벽 풍경을 살필 새도 없이 동구 밖을 빠져 나온 시외버스를 탔습니다. 버스안에는 쓰러지면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옷을 껴입은 두 아이를 데리고 김동학 선교사 부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제 낮,
나쟈 선생님과 언어 공부 하는 중에 블라디보스톡 국제학교에 계신 홍정웅 장로님 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급히 의논 할일이 있으니 블라디 보스톡으로 두가정 부부 동반 해서 내려 왔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는데
블라디보스톡 인근 나제진스키 군(county)에서 영농쎈터 유치에 관심이 있어 청사진을 제시 해 달라는 요청이 있어서 1월15일까지 조감도를 포함한 사업계획을 완성 제시 해야 한다는 것이였습니다.내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이곳사람들은  크리스마스에는 관심이 없으니 출석교회의 야체이카라는 구역 모임에나 갈까?
아니면 홀로 계신 김기남 선교사님과 저녁식사를 해야하나 생각하고 있다가 갑자기 블라디 보스톡으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김동학 선교사   형 TOYOTA wagon이 그동안의 무리를 감당하지 못하고 바퀴 축에 문제가 생겨 부득이 기차를 이용하게 되었습니다.
 
우스리스크행 시외버스는 만원으로 주행함에도 불구하고, 아내와 사모님은 발이 시려워 힘들어 하는 가운데 종점인 우스리스크 기차역에 도착할 즈음에야 어슴프레 어둠이 걷히고 있었습니다. 역전에는 거대한 레닌 동상 주변에 아주 작은 카트를 세워 놓고 커피와 TEA를 파는 러시안 아줌마들 몇이 추위에 언 손을 호호 불며 서 있었고,표를 사기 위해 통과 해야 하는 플렛홈에는 놀랍게도 많은 짐을 쌓아 놓고 웅성 거리면서 담배를 피우며 서있는 북한 노동자들을 볼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들어간 대합실안에도 몇몇 러시아 인들을 제외하곤 거의 붉은 뺏지를 단 북한 노동자들이 앉아 있었는데 그들이 고향으로 돌아 가기 위해서는 이곳 우스리스크에서 기차를 타고  하싼이라는 곳까지 가서 북한으로 가는 기차로 갈아 타야 하므로 늘 우스리스크 기차역은 그들로 붐빈다는 김동학 선교사의 설명 이였습니다. 그중에 몇사람은 두고온 아이들이 생각 나는지 김선교사의 아이들 마루와 인애를 데리고 가 끌어 안기도 하고 장난도 치며 놀아 주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아파 왔습니다.
이 추운 아침에 고향의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바리바리 선물 짐꾸러미를 쌓아 놓고 이국땅 기차역에 모여 있는 이들에게 따뜻한 컵 라면이라도 한 그릇씩 끓여 주면 얼마나 훈훈한 기억으로 남을까............ 
예수님 탄생하신 EVE에,가슴 시린 그들에게 우리가 믿는 그분 나라 소망을 전할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얼마후 이리 저리 몰려 다니던 그들이 하싼행 기차를 타고 떠나 버린, 휑하니 빈 대합실에서 김인경 사모는 아이들 아침으로 싸온 삼각 김밥을 그들에게 전해 주지 못함을 못내 아쉬워하였지만,우리가 앞으로 생각해야할 또 하나의 사역지를 눈으로 보았다는 것으로 만족 해야 했습니다. 추위에 얼어 빙판이 된 플렛홈을 조심스레 걸어서 9시 50분 정시보다 10분 정도 늦게 도착한 열차에 탑승하였습니다.
 
결혼한 후 미국에 가기 전 까지 한국 철도청에 근무 했던 저에게는 러시아에서 기차를 타는것에 남다른 감회가 있었고, 특히 이 노선을 통해 1937년 연해주 고려인들이 중앙 아시아로 화물열차에 실려 강제 이주 되었던 비극적인 역사의 현장을 볼수 있게 된것에 자못 흥분되어 있었습니다. 좌석이 나무로 되어 있어서 오랜 시간 앉아 여행 하기에는조금 불편한것 빼고는 다른 나라 철도 보다 협궤가 넓어서 열차 내부 공간이 크므로,왕래가 자유로운 통로와, 확 트인 창문으로 눈에 덮힌 광활한 평원을 볼수 있는 비교적 편안하고 깨끗한 느낌이었습니다.
 
간이역에 열차가 설 때마다 안내 방송을 하고,모자를 쓴 여자 승무원이 차표 검사를 하며, 가끔씩 중도에서 올라 탄 잡상인들이 추운 겨울에 필요한 양말이나 레깅스를 목에 걸고 돌아 다니며 판매 하거나, 꼭 큰 멸치 만한 얼은 생선을 봉지에 담아 팔기도 했으며,점심시간이 닥아 오자 "삐라시끼"라고 외치며 고로께 맛에 군만두를 닮은 간식을 팔기도 했습니다. 술취한 젊은 여인이 닥아와 중국인 이냐 물으며 치근 거리다 떠나가고,통기타를 어께에 메고 기차에 올라온 집시 여인이 한곡 부를테니 기부를 하라고 말하고는 처량한 노래 두곡을 부르고, 너희들이 무슨 예술을 아느냐는 표정으로 우리에겐 눈길도 주지 않고 떠나 갔습니다.
 
이 낯설지 않은 풍경................
꼭 1960년대 내고향 양평으로 가는 마지막 중앙선 완행열차를 탄듯 제 가슴에 뭉클한 그리움이 솟아 올랐습니다. 시베리아의 혹독한 추위와 굶주림 속에 강제 이주 도중, 얼어죽은 노약자들의 시신을 창밖으로 내어 던지며 달려가는 철마 안에서 울부짖던 우리의 핏줄 까레이스끼들의 한이 널려 있는 이 철로를 달리는 열차 안에서 내가 느끼는 이 가당치 않은 60년대의 낭만이라니...............
슬그머니 가슴에 차오르는 값 싼 감정의 유희를 고개 흔들어 떨쳐 냈습니다. 차창으로 끝이 없이 펼쳐져 있는 연해주 설원을 내다보며,강제이주 후 70여년이 지난 오늘날에, 또 다시 중앙 아시아에서 연해주로 역 이주하여 생존을 위해 지금도 이 얼어 버린 동토를 헤메이는 까레이스키들과 외화벌이 노동자로 이땅을 떠도는 북한 노동자들의 처절한 현실이 생각 났으므로...................
 
12시 30분
꽁꽁 얼어 붙은 강 위로 승용차를 타고 들어가 얼음 낚시를 하는 강태공들을 바라보며 노보사흐딘스크라는
간이역에서 내려 플렛홈 끝에 마중 나오신 홍장로님을 만나 국제학교로 갔습니다. 회의를 끝내고 돌아가는 기차가 끊겨 국제학교 고황경 장로님 차편으로 블라디보스톡 시외버스 정류장 까지 가는데, 전번에 내린 폭설이 아직도 제설 되지 않아 블라디보스톡 시 전체가 거의 마비 상태 였습니다. 평상시 20분 거리를 1시간 반이나 걸려 도착해서,막 떠나는 미하일로프카를 경유하는 고속버스를 탈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떠나는 버스를 쫒아 가던 아내가 빙판에 미끌어져 엉덩방아를 찢는 바람에 걱정을 했으나 다행히 뻐근한 통증 만이라서 한숨을 놓았습니다.

오후 6시.
이미 거리는 어둠이 내리고,오랜 시간이 걸려 도심을 빠져 나온 고속버스는 어둠 속을 달리기 시작하고 난방이 잘된 버스 안에서 우리는 언 몸이 풀어져 녹초가 되어 잠이 들어 버리고........... 얼마를 자다가 너무 더워져  깨어 보니,김선교사 부부는 두아이들과 자고 있었으며, 아내는 칠흙같이 어두운 차창 밖을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넘어진 부위가 어떠냐고 물으니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미안해서 할 말이 없었습니다. 29년 결혼생활 동안 아내에게 그렇게 좋은 크레딧을 받고 살지 못했습니다.
부부 싸움이라도 할라치면,내가 결혼 이후,골프를 쳤느냐, 교회를 빠졌느냐, 술,담배를 했느냐, 아니면 도박을 했느냐며 윽박 지르기가 일수 였습니다. 밖에서는 남의 어려움은 잘 헤아려 위로 하면서, 평생 화원에서 일하며 피곤해 하는 아내에겐 정작 따뜻한 말로 위로 한번 제대로 해본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런 남편이 7년 동안 연해주에 마음을 빼앗겨,일년 벌어 여름이면 바람 난 한량처럼 떠돌아 다녀도 아내는 소리내어 잔소리 한번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연해주 가면 하나님 빽으로 내가 책임 진다는 그말을 믿고 선교길에 따라 나서기 까지 했는데...........
나이 생각 못하고,20년 어린 젊은 선교사 하는 일이 너무 아름답다며,그와 같이 힘있게 사역하겠다고 따라 다니는 내 건강 챙기려 좋은 음식 먹이겠다고 요리책 펴 놓고 공부(?)도 하는데............. 넘어질때 잡아 주지 못해서 미안 했습니다.솔직히 말해서 아내가 뛰는것 생각 못하고 떠나는 버스 놓치지 않으려고 나만 뛰었거든요.
 
9시 45분 
버스가 미하일로프카 삼거리에 우리를 내려 놓고 떠나 버린 뒤, 잠든 아이들을 들쳐 메고 힘들게 잡은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 면 사무소 앞에, 화려하진 않지만 소박하게 장식된 크리스마스 츄리가 서 있었습니다. 김 선교사 가족과 헤어져 집에 들어 가서 지친 몸 샤워하고 나니 배가 고파 왔습니다. 급한대로 중국 시장에서 고가(?)를 주고 사온 진품 한국산 신라면을 대파와 호박에 계란까지 풀어끓여 먹으며 아내가 말했습니다. "라면은 자기가 끓여야 제 맛이란 말이야" 너무도 길었던 하루를 무사히 마침을 아내와 함께 감사 기도 드린 후에 침대에 누웠습니다.
 
참 쓸쓸한 크리스마스 이브 였습니다.
 
연해주에서
곽동원&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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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해 여러분이 보내 주신 사랑에 감사 드립니다.
즐겁고 주님의 따스한 사랑이 넘치는 성탄절과 알찬 계획으로 시작 하시는 새해 되시기를 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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